역사와 야사에서도 이름이 사라진 채홍사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정치인들이 떡밥을 물은 것 같다. 채홍사에 대한 이해를 간략하게 돕자면, 영화 간신에서 기녀를 모집하던 관원을 생각하면 된다. 고 박원순 前시장의 시시비비는 따져봐야겠지만 추측성 뇌피셜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는것을 보니 올 하반기도 본류보단 아류에 시끄러울 듯 하다. 

 

채홍사(採紅使)는 1504년의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이 미녀를 뽑기 위해 전국에 파견한 임시 관원이다. 『연산군일기』에는 미녀와 함께 좋은 말을 징발하려는 목적의 채홍준사(採紅駿使)라는 명칭이 좀 더 많이 나온다. 채홍사는 연산군 때 이후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산군의 폭정과 황음(荒淫)이 극도로 치달은 1504~1506년에 한정되어 운영된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관직이었다.

채홍사는 이런 수많은 기녀를 충당하기 위해 전국으로 파견된 임시 관원이었다. 채홍사 이외에도 수시로 채청여사(採靑女使), 채홍준체찰사(採紅駿體察使), 채홍준순찰사(採紅駿巡察使), 채홍준종사관(採紅駿從事官) 등이 파견되어 여색과 준마를 징발하였다. 채홍사 등은 왕의 엽색(獵色) 행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이례적 관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조직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채홍사 이계동(李季同)·임숭재(任崇載)·임사홍(任士洪) 등이 평안도·황해도 등에 파견된 기록이 보인다. 이들의 관직을 보면 임사홍과 임숭재는 부자인데 종1품 이조 판서와 정1품 부마이고, 이계동은 정1품 영중추부사인데, 그 모두는 연산군의 총신이다. 또 채홍준체찰사 등에 보이는 체찰사·순찰사는 정1~종2품관이 외방사신으로 출사할 때 제수된 관직이고, 종사관은 당하관 이하가 제수되어 체찰사 등과 같이 파견되어 그에 부여된 실무를 총괄하는 관직이다. 이로 볼 때 채홍사 등에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는 정1~종2품관과 그를 보좌하는 당하관 이하인 종사관이 함께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

채홍사는 갑자사화 이후 파견되기 시작해 연산군이 폐위된 뒤에는 기록에서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연산군의 폐출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관련 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정년을 맞이할때 까지는 명실상부 국가의 핵심산업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완성차를 만드는 회사도 있지만 사실 성장성이 더욱 높은 곳이 자동차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자소서는 현대그룹사 중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 합격한 연구직 지원자의 것입니다. 인문계/상경계 직군들과 다르게 딱딱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진실성이나 열정에 대해서는 잘 기술된 것 같습니다. 요즘의 자소서와는 달리 트렌디 함은 전혀 없습니다만, 이는 직군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니 감안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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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첫사랑은 자동차입니다.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수업시간, 연습장에 첫사랑 자동차 그림만 그리다 선생님께 혼나고, 용돈으로 산 자동차 잡지 때문에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했습니다.
 
  첫사랑 자동차의 전자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전자전기공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제어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동 고속도로를 연구하고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저의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전자회로와 통신, VLSI(Very Large Scaled Integration),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 등 제가 재미있게 배운 분야를 이용해 ECU(Electrronic Control Unit)를 만들고 싶습니다. 특히 GPS와 근거리 통신을 이용한 자동차 차량제어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한국 최고 자동차부품 기업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진출하고 있는 XXXXX에서 제 꿈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제 경쟁력은 영어실력입니다. 어려서부터 영어공부를 좋아했고 외고 영어과에 입학해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쌓아온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카투사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미군과 함께 훈련 받고 생활하면서 미국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군들을 집에 초대하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며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문화 외교관 역할도 했습니다. 복학 후 국제교류 학생회의 파티 팀장과 회장을 역임하며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을 도와주고 외국인을 위한 한글 수업, 강연회와 같은 국제교류관련 프로그램도 개발 진행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꿔왔습니다. 앞으로 저는 한국 최고의 자동차 부품기업 XXXXX에서 10년후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을 만들겠다는 꿈을 꿉니다. 10년 후 세계 최고의 자동차 전문기업 XXXXX에서 우수한 해외 엔지니어들과 ECU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실천 방안으로 제가 꿈꾸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첫째, 앞으로 센서 분야에 많은 발전을 줄 MEMS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관련 과목을 수강하면서 MEMS가 반도체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MEMS를 더 공부해 ECU에 사용하는 센서를 더 작고 정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둘째, 많은 세계 자동차 석학들과 원활한 정보교류를 하기 위해 더욱 영어 실력을 키우겠습니다. 더 적절하게, 더 상황에 맞게, 더 고급스럽게 영어를 쓰기 위해 미국 뉴스 시청을 하고 따라잡겠습니다.
 
  전반적인 공학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특히 기계 분야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XXXXX에 다니며 제 시간을 이용해 대학원에 다니겠습니다. 업무에서 모르는 전자 이외 공학 지식이 있으면 퇴근하고 밤을 새워서 공부하더라도 제게 주어진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는 기계 지식이 필요한 전자과 출신 동료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겠습니다. 세계 최고 자동차 부품회사 XXXXX에서 세계 최고 자동차 연구원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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