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있는 집은 91년에 입주를 시작한 약 26년쯤된 아파트입니다. 전 주인께서 수리를 몇년전에 했기에, 집 내부는 나름대로는 깔끔하고 오래된 아파트 같지는 않은데, 집 외부를 보면 참 낡았다...싶긴해요. 기가급 랜도 안들어오고(이게 제일 불만)

 

여기에 작년 8월부터 살았습니다. 1년 넘게 살고 별 생각없었는데, 여기에 살고나서 처음으로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을 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 동안 집에서 샤워는 해도 목욕은 안했거든요. 욕조에 물을 받고 보니 뿌~연겁니다. 뭔가 부유물도 떠있는 느낌이고

 

아 이거 녹물이구나 싶었죠. 배관이 노후화되어 청소를 한다 어쩐다 그런걸 엘리베이터에 붙여져 있던걸 본 기억이 났습니다. 이 물에 계속 샤워를 한건가? 싶더라고요. 사실 배관 자체를 제가 어떻게 할수는 없고, 연수기라는 기계(물건?)이 있다고 들어서 알아봤는데 가격이 만만찮고 녹물제거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계속 검색을 해보니 수도 나오는쪽에 필터를 설치해서 녹물을 거르는게 있기에 사서 써봤습니다. 지난번에 볼트리무버 사용기를 올렸더니 광고의심하시는분이 계셔서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절대 광고아닙니다. 제품이 다양하게 있는듯한데 사실 원리나 품질이나 가격이 비슷비슷해서 어느 브랜드의 제품을 쓰셔도 품질이 비슷할거라 생각합니다.  

 

 

포장상자를 제거하면 구성품은 단촐하고요. 사는김에 샤워기 헤드도 교체했습니다. 그쪽에도 필터가 있어요. 

 

 

설치는 뭐 매우 쉽습니다. 연결부분을 뺀지로(스패너가 있으면 그걸써도 되겠고요. 전 없어서...)돌려 빼준다음 저걸 끼우면 되니까요. 샤워기 헤드도 슬슬 돌려서 새걸 장착해주면 되고요. 설치가 완료된 후의 모습입니다.

 

 

 이래놓고 물을 틀어보니, 딱히 피부로 느껴지는 변한건 잘 모르겠더군요. 이게 낮시간이나 사람들이 물을 많이 안쓸때에는 녹물이 많이 안나오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7시30분정도에 샤워를 하려고 물을 트니까 저 필터에 녹이 들어가는게 보이더군요. 그렇게 한달정도 사용했습니다.

 

 

왼쪽이 한달정도 사용한 필터이고, 오른쪽이 새 필터입니다. 대충 한달 주기로 교체해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가격은 몇천원 정도? 

 

솔직히 말해 제가 몸으로 느껴지는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만, 어쨌든 눈으로 필터가 상한게 보이고, 부유물 이런게 없어졌으니, 효과는 있는거겠죠. 실제 더 크게 느낀건 저 샤워기 헤드가 물줄기를 강하게(아마 노즐 단면적을 줄여서 같은 수압에도 빠르게 외부로 물을 뽑아내는 원리겠죠?) 만들어줘서 그게 더 좋긴했습니다. 

 

집에 녹물이 나오시는 분들은 크게 비싸지 않으니 구입하셔도 괜찮겠다싶어 사용기를 남겨봅니다. 

나무를 고사시키는 유해 곤충인 매미나방 유충 때문에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 각 시·군마다 방제에 나서고 있지만, 약이 잘 듣지도 않고 천적도 없다보니 번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책로 철제기둥에 하얀 나방이 빽빽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지난밤, 불빛을 찾아 도심 공원으로 들어온 매미나방입니다. 나방 가루가 몸에 닿으면 피부 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우려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살충제를 뿌리고 나방과 알집을 일일이 떼어내 불에 태워 개체 수를 줄여보지만 그때뿐입니다. 실제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하루 종일 방제를 해도 그 이튿날 가면 또 많이 나타나고, 그래서 민원도 계속 들어와 관리부처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평년보다 포근했던 날씨로 매미나방 유충들이 죽지않고 부화율이 높아져 개체 수가 급증한 겁니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에 대한 구분은 다양한데, 보통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밀레니얼세대는 1980년부터 199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현재 약 만39세부터 만25세까지를 뜻한다. 사람에 따라 1995년이 아니라 2000년대 출생까지로 확장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Z세대(Generation Z)는 1995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 2019년 기준으로 만24세 이하를 말한다. Z세대는 태어났을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돼 ‘디지털 네이티브’나 스마트폰을 쥐고 자랐다고 해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도 불린다.

 

 

2016년 통계청이 제시한 ‘2019년 세대별 인구 분포 전망’에 따르면, 밀레니얼세대 는 22.2%, Z세대는 21.7%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세대는 디지털 환 경에 익숙하고, 모바일을 우선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MZ세대로 묶어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Z세대를 어린 밀레니얼세대 정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환경 차이로 다르게 나타나는 미디어 소비 경향 스마트폰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Z세대와 달리 밀레니얼세대는 어렸을 때 소셜 미디어나 스마트폰이 없었다.

밀레니얼세대는 2G폰과 함께 컸으며, 성장과정에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시작과 발전을 함께했다. 다만 밀레니얼세대는 80년대 생인지 90년대생인지에 따라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접한 시점이 다르고, 이 에 따라 한 세대 안에서도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세대에 따른 미디어 특성 차이는 사용 매체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시기적으 로 보면, 1998년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며, 인터넷 이용자 수가 급증해 2002년도에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같은 시기 인터넷 기반 포털 서비 스가 태동하며 인터넷 붐이 일었다. 이후 2009년 스마트폰(갤럭시 출시, 아이폰 도입) 사용이 시작되며, 모바일 시 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와 함께 TV와 라디오 등을 통해 일방적이고 단방향으로 정 보를 제공받던 소비자들은 PC(인터넷)와 스마트폰(소셜 미디어)이라는 변화된 매 체를 통해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콘텐츠 속성도 양방향으로 변했다. 밀레니얼세대는 이러한 기술과 콘 텐츠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세대로, 변화를 생활에 반영하며 성장했다.

반면 Z세대는 모바일 시장의 성숙기에 출현해, 상대적으로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를 소비해왔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익숙하게 접한 매체가 다르고, 이에 따라 다른 미디어 소비 특성을 보인 다. 특히 80년대생 밀레니얼세대는 통상 말하는 MZ세 대의 특성과 거리가 있다. 현재 30대 초반부터 후반을 차지하는 80년대생 밀레니얼세대는 TV를 통해 미디어 를 소비해온 시간이 길다. 또 20대인 90년대생과 달리 이미 가정을 이뤄 독립한 경우도 있어, 이후 세대 대비 TV를 통한 RMC 소비를 더 익숙하게 느낀다. 8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부터 Z세대까지, 기존 TV와 RMC(Ready Made Contents, 사전 제작 콘텐츠) 영 중심의 콘텐츠 향유는 점차적으로 모바일과 UCC(UserCreatedContent, 사용자 제작 콘텐츠)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한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세대로 퍼져나가고 있다. 10대만의 전유물이라고 느껴졌던 틱톡에서 40대 이상 비중이 커지는 것과 유튜 브에서 중장년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 다.

세대의 변화는 결국 사회의 흐름과 결을 같이 한다. 

인천 서구 주민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수돗물 유충' 사진

"필터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더니 유충이 발견됐어요." 인천광역시 서구 일대 주민들이 '수돗물 유충' 문제로 불안해하고 있다네요,

제가 사는 일산도 필터를 쓰면 금방 붉게 변하고 이물질도 많이 끼긴 하던데 벌레는 없었는데 이거 심각하네요,

뉴스에 따르면 인천상수도사업본부 서부수도사업소 측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어제까지 서구 지역에서 수도물에서 유충이 나왔다는 신고가 10여 건 접수됐다고 하는데 해당 지역은 지난해 붉은물 논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 인천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仁川廣域市 上水道事業本部)

인천광역시의 수도 공급, 급수서비스 향상, 상수도 사업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인천광역시청 산하에 설치된 사업소이다.

중앙정부 기관이 아니라 지자체 관리 기관인데 관리 감독에 허술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날이 더워 벌레가 많아지는 것은 이해가 되나, 그래도 시민들이 먹고 마시는 물인데 분명한 원인과 해결책이 필요할 듯 보인다. 

역사와 야사에서도 이름이 사라진 채홍사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정치인들이 떡밥을 물은 것 같다. 채홍사에 대한 이해를 간략하게 돕자면, 영화 간신에서 기녀를 모집하던 관원을 생각하면 된다. 고 박원순 前시장의 시시비비는 따져봐야겠지만 추측성 뇌피셜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는것을 보니 올 하반기도 본류보단 아류에 시끄러울 듯 하다. 

 

채홍사(採紅使)는 1504년의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이 미녀를 뽑기 위해 전국에 파견한 임시 관원이다. 『연산군일기』에는 미녀와 함께 좋은 말을 징발하려는 목적의 채홍준사(採紅駿使)라는 명칭이 좀 더 많이 나온다. 채홍사는 연산군 때 이후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산군의 폭정과 황음(荒淫)이 극도로 치달은 1504~1506년에 한정되어 운영된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관직이었다.

채홍사는 이런 수많은 기녀를 충당하기 위해 전국으로 파견된 임시 관원이었다. 채홍사 이외에도 수시로 채청여사(採靑女使), 채홍준체찰사(採紅駿體察使), 채홍준순찰사(採紅駿巡察使), 채홍준종사관(採紅駿從事官) 등이 파견되어 여색과 준마를 징발하였다. 채홍사 등은 왕의 엽색(獵色) 행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이례적 관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조직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채홍사 이계동(李季同)·임숭재(任崇載)·임사홍(任士洪) 등이 평안도·황해도 등에 파견된 기록이 보인다. 이들의 관직을 보면 임사홍과 임숭재는 부자인데 종1품 이조 판서와 정1품 부마이고, 이계동은 정1품 영중추부사인데, 그 모두는 연산군의 총신이다. 또 채홍준체찰사 등에 보이는 체찰사·순찰사는 정1~종2품관이 외방사신으로 출사할 때 제수된 관직이고, 종사관은 당하관 이하가 제수되어 체찰사 등과 같이 파견되어 그에 부여된 실무를 총괄하는 관직이다. 이로 볼 때 채홍사 등에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는 정1~종2품관과 그를 보좌하는 당하관 이하인 종사관이 함께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

채홍사는 갑자사화 이후 파견되기 시작해 연산군이 폐위된 뒤에는 기록에서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연산군의 폐출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최저임금이 872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월급은 182만2480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3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10분까지 정부세종청사에서 제8차, 제9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이 같이 의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는 올해(2020년) 최저임금 8,590원에 비해 130원(1.5%) 인상된 수준으로 인상률로 따지면 1988년 위원회 운영 시작 이래 최저이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182만2480원으로 올해 대비 2만7170원 인상되는 것이다.

(출처: 고용노동부)



지난 13일에서 이날까지 열린 8~9차 회의는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인이 불참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논의가 진전되지 않자 노·사의 요청에 의해 공익위원 심의촉진구간을 8620원(0.349% 인상)에서 9110원(6.1% 인상)으로 제시했고 노·사는 구간의 최저와 최고급에에 맞춰 2차 수정안을 제시했다.

근로자위원은 3차 수정안으로 2차 수정안을 유지한 9,110원(6.1% 인상)을 제시했고 사용자측은 8,635원(0.52% 인상)을 제시했다. 이후 양측은 더이상 간극을 좁히지 못해 공익위원이 단일안을 제시했다.

공익위원안이 시급 8,720원(1.5% 인상)을 제시하자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전원(5명) 및 사용자위원 2명은 해당 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퇴장했다. 결국 공익위원 단일안으로 표결을 실시해 2021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시급 8,720원으로 의결했다. (재적위원 27명 중 16명이 출석해 찬성 9명, 반대 7명으로 공익위원안이 가결됐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흠결이 없어야 하는 위인중에 위인이다. 역사라는 것은 그때의 사실보다는 후대의 해석으로 평가받는 만큼, 아직도 관노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다르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는 노비 여진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이순신이 품에 안은 여자. ‘여진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이 아파 울었다’ 같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난중일기 속 ‘여진’은 처음엔 번역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누구는 여자 노비로, 누구는 여진족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여진이 여자 노비라는 증거는 여전히 명확지 않다. 이순신, 그도 여자를 탐했을까?

인터넷엔 한때 ‘이순신이 동침한 여자’라는 주제의 글이 떠돌기도 했다. 대부분 난중일기 번역본의 일부 문장을 가감한 글이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1596년 9월 14일.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1596년 9월 15일. 여진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이 아파 울었다.

1596년 9월 19일.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어떤 사람은 “이순신이 이렇게 난잡한 생활을 했나요?”라고 묻는다. 또 어떤 사람은 “이순신 장군도 관기나 종들과 ㅅㅅ(섹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나 당시 이순신의 상황을 생각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조선시대엔 ‘종년을 간통하는 것은 누운 소 타기보다 쉽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양반 주인의 힘이 막강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경우 어머니와 아내가 인근에 머물고 있었다. 자식과 조카도 수시로 왕래했다. 군사와 백성들이 늘 리더 이순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이항복의 기록처럼 책임감으로 전쟁터에서 심신이 지극히 피로한 상태였다. 스스로도 젊었을 때부터 여색을 절제하려 했다. 그런 그가 함부로 다른 여인과 동침하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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