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차별적으로 자소서를 쓸수 있는 아이템 중 좋은 것이 바로 본인의 이름입니다. 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자소서를 쓰는데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광고/홍보 직군같은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직종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아래 예문은 광고/홍보쪽을 지원/합격한 여학생의 자소서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글을 시작하며 인사담당자의 주위를 우선 끌어내고, 자신이 다녀온 여행을 통해 사회인으로서 염두해야할 점을 여행의 경험과 연결하여 자소서를 풀어낸 케이스 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자소서에 쓸 사회경력이나 경험이 없다고 해서 억지로 학교생활이나 부족한 경험을 어색하게 강조하기 보다는 지원하는 지원자의 입장(신입)에서 마라톤이나 등산과 상대적으로 긴시간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활동 등을 통해 미래 사회인이 되고자하는 미래의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느끼고 얻은 교훈을 정리해보는 연습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내가 자소서에 쓸 경험이 없다면 이번주라도 당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5km마라톤이라도 신청(증명서나 메달 주는 코스)해보고 설령 그 5km를 뛰지못하고 걷더라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렵다면 설악산, 지리산, 치악산 등 정상등반도 좋습니다.)

합격자들의 자소서를 살펴보면 여러분이 준비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읽었을때 부드럽게 읽히냐 아니면 뻑뻑하게 읽히냐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꼭 작성하고 소리내어 읽어보시고 탈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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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XX 광고기획 
 
  저를 이끌어가는 삶의 모토는 ‘삶은 유희고, 유희는 삶이어야 한다’입니다. 즉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사랑을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등 삶의 일상적 행위들을 하나의 ‘유희’ 활동으로 즐길 수 있다면 인생을 더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밝음이 넉넉하다’라는 뜻의 유희(裕熹)라는 이름 덕분인지 이러한 저의 가치관은 삶의 모든 것에 긍정적으로 임하고, 쉽게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와 유희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에는 책, 직업, 사람, 운동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겠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브랜드나 상품의 홍보를 넘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의 의미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2007년 스웨덴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하며 여러 국적의 친구들과 문화를 공유하고 타인과의 차이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방학 2개월 반 동안 유럽 14개국을 쉬지 않고 떠돌아다녔던 여행입니다. 8개월 동안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함께 아시아대륙을 횡단해 유럽까지, 여행객의 발이 잘 닿지 않는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다른 사람이 저와 달리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며 살아가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았고, 체력이 떨어졌거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 속에서도 당당히 침착하게 대응하는 여유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즉 나라는 울타리에 갇힌 고정관념을 버림과 동시에 남과 다른 나라는 존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백번의 광고를 보며 삽니다. 광고는 제품홍보의 기능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의 문화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매력적이고 필수적인 활동입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컴에 지원하는 지금, 그리고 되고 나서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저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들과 광고를 향한 소신을 절대 잃지 않겠습니다.

막연히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다는 목표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과 연결지점이 없는 상황이라면 현재 본인의 스펙이 좋고 나쁨을 떠나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원하고자 하는 시점에 자신과 연결지점이 있는 직군의 TO가 생긴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최근 채용 시장의 트렌드를 보면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생겨나는게 세상의 이치인 만큼 자신의 이력서를 견고하고 탄탄하게 만드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래 사례는 자신의 경험과 지원하고자 하는 직무의 연결성을 기반으로 지원동기를 풀어낸 사례입니다. 최근 합격한 지원자들의 자소서를 보면 이야기를 시계열(시간의 순서)로 쓰는 형태는 유지하되 인사 담당자에게 던지고 싶은 메세지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울리지 않더라도 젤 먼저 쓰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아래 사례가 그런 케이스를 보여줍니다. 장단점이 있을 수 있지만 두괄식으로 자신이 가진 남들과 다른 장점을 먼저 던져놓고 나머지 이야기는 연결된 내용으로 풀어나가는 형식인데 읽는데 있어 어색함이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남들과의 다른 차별점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보시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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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한화 XX부문 
 
  휴학기간 중 중소업체인 XXXXXXX에서 1년간 재고 담당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홀로 과중한 업무를 맡아야 했지만 한 번 맡은 일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시간 내에 끝내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그 결과 1년 후 퇴사 시 직원들로부터 업무수행을 인정받아 사장님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1년간의 사회 경험은 앞으로의 회사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대학 2학년 때 갑작스레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스스로 등록금과 용돈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식판닦기,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타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하느라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남들이 누리는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초라하고 불행하다고 느낄 때도 많았지만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고난과 역경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우등생으로 장학금을 수상한 자신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역경이 오히려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다듬어 주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견뎌낸 지금, 저는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과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자신을 선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군 시절 탄약관리 주특기를 받고 소속 대대의 탄약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탄약을 접하며 화공과라는 전공 때문인지 호기심과 관심이 발동해 더 열심히 탄약의 구조 및 원리에 대해 공부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자긍심도 높아지게 됐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 임무에 더욱 열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고 이 분야의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약품이나 화약 같은 위험물질을 취급하고 다루는 산업현장에 있어서 저의 이러한 관심과 열정, 꼼꼼한 성격은 제품의 안전한 생산 및 품질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0년 후 제 손으로 직접 만든 제품이 건설 및 채굴 현장, 탄약, 로켓, 항공기 등 여러 분야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화약 생산관리 분야의 프로가 되고 싶습니다.


■ 최근 전기車와 ESS(에너지저장장치), 모바일폰의 성장이 확대되면서 리튬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
- 배터리 시장 급성장으로 이차전지의 소재인 양극재(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및 음극재(흑연)의 가격도 급등하고 있음
- 대표적 양극재 소재인 코발트의 경우 2016년 말 이후 가격이 2.5배 이상 급등하였음

 아프리카에는 코발트, 니켈, 망간, 흑연 등 이차전지소재의 매장이 풍부함
- 양극재의 핵심 소재인 코발트는 전 세계 매장량의 60% 이상이 매장되어 있으며 망간은 약 40%, 니켈은 10% 그리고 흑연은 20% 이상 매장
- DR콩고는 세계 최대 코발트 매장국으로서 전 세계 매장량의 56%를 차지하며 생산비중은 최근 70%를 상회하고 있음. 또한 망간과 니켈은 남아공과 마다가스카르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남아공은 세계 최대 망간 생산국임
- 이 밖에 흑연은 최근 세계 최고 품질수준이며,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모잠비크와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개발이 시도되고 있음

 아프리카 이차전지소재 개발은 Glencore(스위스), China Molybdenum(중국), Syrah(호주), 스미토모 등이 주도하고 있음
- 코발트는 Glencore와 중국기업들이, 니켈은 스미토모와 청산그룹 그리고 Sherritt 등이, 망간은 남아공기업들과 Anglo American등이 주도하고 있음
- 이 밖에 흑연은 Syrah와 Triton Mineral 등 호주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음

 그러나 아프리카는 불투명한 행정과 인프라 및 금융 수준 낙후로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등 자원개발 사업이 용이하지 않음
- 특히 최근 DR콩고 사례처럼 갑작스런 광물법 개정에 따른 로열티 등 각종 세금 인상과 광권회수 등의 리스크 요인들이 발생할 수도 있음

 최근 이차전지소재에 대한 수요 급증에 따라 글로벌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소재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진출은 미진한 상황임
- 2006년 시작한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에서 니켈과 코발트를 생산하는 것 이외 아프리카 진출 사례는 아직 미미함
- 이차전지소재 Captive mine 확보가 절실한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현지기업이나 기(旣) 진출한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진출 모색 필요


■ 구글벤처스(벤처캐피털)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투자 비중 확대
- 2015년 이후 총 58건의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투자를 집행했으며, 2014년 이전 주요 투자 건은 상장 혹은 대기업 인수로 수익 실현 다수

 구글X에서 독립한 베릴리는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 JV 설립하여 의료기기 공동 개발 중
- 노바티스(Novartis)와 당뇨 진단 및 자동초점 콘택트렌즈를 공동 개발 중이며, 사노피(Sanofi)와는 당뇨병 통합 관리 체계 및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
- 존슨앤존슨(JnJ)과 소형 스마트 수술로봇을 개발하고, GSK(GlaxoSmithKline)와는 생체전자의약품(Bioelectronic medicine) 공동 개발에 협력

 딥마인드와 구글은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 IT기술 접목하여 의료 분야에 진출
- 딥마인드는 영국 병원•연구센터와 진단 기술 공동 개발 및 관련 스타트업 인수 통해 의사용 앱(App) 개발
- 구글은 의료 IT 기업들과 협력, 의료기관용 클라우드 인프라(G Suite) 구축

 이유(Why):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요소가 보건의료 및 생명공학 중심에서 ‘데이터 분석과 예측’으로 변화
- 의료 데이터 급증으로 데이터 상호 관리 및 접근성 확대가 주요 이슈로 부상
- 다양한 관점의 통합 분석 및 진단~치료제개발~사후관리까지 효율성 제고 가능
- 임상시험 여건 악화 및 성공 가능성 저하로 데이터 분석 임상연구에 주목

 분야(Where): ‘데이터와 IT’가 있는 곳에 진입, 자사 강점 최대한 발휘
- 구글벤처스 투자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유전자 분석, 빅데이터, AI 알고리즘 기반으로 치료제 개발 중
- 기존 의료 IT 시스템의 클라우드 기반 통합 및 의료진용 앱(App) 개발도 진출

 방법(How): 글로벌 제약사 협업, 외부 인재 영입 등 X&D 최대한 활용
- 베릴리(구글)의 데이터 분석력과 각 제약사의 생명공학 역량의 결합(C&D)
- 베릴리는 CEO 및 주요 경영진에 업계 저명 연구자들 영입(A&D)
- 구글벤처스는 수동적 투자 방식 채택으로 스타트업의 자율성 유지 및 유사 기술 개발 스타트업에 분산 투자(S&D)

요즘 이력서에서 볼수 없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엄격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예전에는 이런 문구가 어디서나 볼 수 있어 차별점이 없었는데, 최근의 이력서에서는 찾아 볼 수 가 없습니다. 지원동기를 자신의 성장과정에 연결하여 작성한다면 지원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왜 자신이 지원하게 되었는지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성격적 장점을 연결할 수 있어 다른 항목에서 기술하지 못한 이야기도 작성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표현이라고 해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지원하는 회사에 적합한 인재라고 설명할 것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총무/지원과 같은 Generalist를 요구하는 포지션일수록 지원자가 주도적으로 열정적으로 일을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이 Key point입니다. 

아래는 다소 Old fashion하지만 본인의 성장배경에 자신의 입사후 포부까지를 연결해 입사에 성공한 사례로 본인의 경우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 좋을 것 같아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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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 XX공항공사 지원총괄팀 
 
  저는 리더로서 경험을 많이 한 행운아였습니다. 자립심을 강조한 家風(가풍)에서 자랐기에 모든 면에서 어른스럽고 노력하는 자세를 지녔던 저는 그 덕분에 학창시절 실장, 전교 어린이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학교에서 여러모로 두각을 나타냈고, 초등학교 때는 ‘어린이우체국’을 설립해 꼬마 우체국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전학간 학교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부회장으로 선출돼 학교 바자회를 여는 등 많은 행사를 이끌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 리더십은 공군장교로서 한 부서를 이끌면서 더욱 극대화되었습니다. 요리도 많이 먹어 본 사람이 잘하듯 저도 어렸을 때부터 준비된 리더십을 발휘해 보이겠습니다.
 
  “너와 알고 지낸 지 10년은 된 것 같다.”
 
  장교로 복무시 알게 된, 안 지 불과 한 달밖에 안된 친구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한 달을 알아도 10년을 알고 지낸 듯한 친근함과 편안함, 그것이 저의 장점입니다. 또한 저는 특유의 재치로 모임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며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쉽게 친해지는 성격으로, 조직을 융합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많은 편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좋아하며, 그들의 말에 바로바로 호응하는 습관이 있는 저의 별명은 ‘방청객’입니다.
 
  하늘을 꿈꾸던 소년은 공군 장교가 되었고, 군을 나온 지금도 그 꿈을 귀사에서 지키고 싶습니다. 군에서 배웠던 항공관련 지식과 부대 운영 경험이 공항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이렇게 귀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귀사와 세 가지 약속을 하고 이를 꼭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첫째, 최단시간에 업무에 적응하는 직원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방공관제 장교로서 익혔던 관제지식과 행정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며, 한달에 한 개의 논문을 작성하겠습니다.
 
  둘째, 공군 행정업무 경험을 통해 얻은 안정된 업무능력을 120% 발휘함은 물론, 끊임없이 개혁안을 내는 아이디어뱅크로서의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셋째, 항상 밝고 예의바른 태도로 상사와 후배 간의 사이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가 되겠습니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한국의 얼굴’인 귀사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겠습니다.
 
 

이력서들을 보다보면 최근의 트렌드에 또 정형화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컨텐츠보다는 내가 누군지에 대해 최근 유행하는 양식, 형태, 단어들을 선택하여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소서를 쓰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건 지원하는 회사에서 왜 여러분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되어야 합니다. 아래의 신문사 취업/합격 자소서에 먼저 한 번 읽어보시고 다시 읽어보면서 자기은 지원하는 회사에 어떤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자소서는 지원동기에 과감하게 지원하는 회사의 단점을 기재하고 그 단점을 본인의 지원동기와 잘 엮어 풀어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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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일보 기자 - 지원동기 
 
  어려서부터 눈에 안경을 달고 살았다. 천성이 내성적이라 방구석에서 책 읽고 텔레비전만 본 탓이었다. 남들과 대화하는 법도 잘 몰랐다. 밥상머리에서 부모와 몇 마디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부모 역시 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내내 방에 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걱정할 법도 했는데, 오히려 밖에서 사고 치지 않는 점을 반가워했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들어갔다. 그제야 안경 너머로 사람이 보였다. 시간만 나면 동기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담배 연기는 어찌나 달콤하던지. 한번 사람 냄새를 맡기 시작한 뒤로는 거칠 게 없었다.
 
  과외 자리를 마다하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술집, 노래방, 당구장,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일부러 생소한 만남에 빠져들었다. 책 종류는 일부러 멀리했다. 또 다른 편식 탓에 학점은 바닥을 기었다.
 
  처음 거머쥔 자유에도 슬슬 염증이 생길 즈음 소집 영장이 나왔다. 대학교 2학년을 끝마칠 무렵이었다. 부친이 국가유공자여서, 자식에게는 6개월 공익근무 혜택이 주어졌다. 그게 싫다면 현역 복무도 가능했다.
 
  손에 들린 카드 두 장을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남이 받지 않는 특혜’라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처진 어깨를 두드리며 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이건 특혜가 아니야. 불법이 아니니까 남들에게 피해줄 일도 없다. 다만 나중에 네가 그만큼 나라에 갚으면 되는 거야. 알겠지?”
 
  우체국에서 공익 근무를 마치고 대학에 돌아오니 자연스레 고학번이 돼 있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고향에 있는 부모는 당연히 고시 준비를 할 줄로 믿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학원비가 통장에 입금됐다. 두 분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었다. 아들놈은 그 돈을 갖고 한겨레문화센터를 찾았다. 기자라는 직업이 궁금해서였다.
 
  하루아침에 그런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공익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해, 1년이 넘는 방황이 시작됐다. 간판은 고시생을 달고 있었지만 실상은 늘 다른 길을 찾고 있었다. 큐레이터, 출판기획자, 문학평론가… 도서관에 서식하며 이런저런 직업소개 서적을 찾아 읽었다.
 
  ‘한번 사는 인생, 내가 사는 세상을 제대로 알고 죽으려면 뭘 해야 할까.’
 
  그러던 와중에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라는 책을 접했다. 평소 이름을 알고 있던 젊은 언론인의 글이었다.
 
  한겨레문화센터 기자 강의를 수료하고, 그해 가을부터 학보사 생활을 시작했다. 늦은 나이였다. 딱 1년만 일할 심산이었는데 2년을 채워버렸다. 인간관계를 떠나서 일 자체가 적성에 맞았다.
 
  얼토당토않게 사회부 대신 문화부에 배치됐지만, 부서 배치는 그리 큰 문제가 못됐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과정은 늘 새롭고 가슴 떨리는 작업이었다. 20년 넘게 살아왔고 대학생활만 4년 이상 했지만, 이때만큼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편식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자가 되는 수밖에 없겠구나.’
 
  어찌 보면 위험천만한 결론을 내리게 됐다. 더 이상 뒤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굳이 XX일보에 인턴 원서를 낸 이유는, 공고가 제일 먼저 뜨기도 했거니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회사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마침 촛불시위에 편승해 안티 XX운동이 극단적으로 치닫던 무렵이었다. 면접을 보던 날에도 코리아나 호텔 앞에는 채 치우지 못한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운 좋게 인턴에 합격하고, 시청 팀에 배치됐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6주 교통비만 15만원이 넘어갔다. 때로는 직접 기사를 발굴하고 때로는 선배들이 시키는 일을 맡았다. 노트북에 카메라까지 들쳐 메고 다니다 보니 디스크까지 걸렸지만 간만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다시 샘솟았다. 그런 느낌이야말로 지친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느낀 XX일보는, 역시나 보수적인 신문이었다. 중대한 나랏일에 대해서 꼿꼿이 자기 할 말을 하는 걸 보니 줏대와 자존심만큼은 국내 제일인 듯했다. 처음에는 ‘1등 신문’이라는 홍보가 무척 눈과 귀에 거슬렸는데, 겪어보니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신문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으나, 시청 기자실에 배치된 온갖 일간지 중에 XX일보 기사의 양질과 편집 실력을 따라갈 만한 신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바로 위 선배들을 보고 있자면, ‘이런 기자가 300명 넘게 있는데 신문이 잘 안 나올 리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제 그 선배들과 정식으로 함께 일하고자 한다. 비록 가진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자의 눈을 밝혀줄 정론지를 만들어가고 싶다.
 
  자존심과 실력은 인정하지만, XX일보에는 아직까지 ‘진정성을 알리는 능력’이 부족하다. 10대부터 90대 모두를 아우르려면 매사에 강경 일변도로 나가서는 곤란하다. 사회 전체를 설득할 만한 아량과 진정성. 나는 그것을 XX일보에 더하고 싶다.
 
 

앞으로 약 10개 정도의 합소서를 업로드 할 계획입니다.
(2018~2019년 합격자 기준)

그동안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쌓아온 경험들과 주변 후배들 코칭 그리고 학교 특강에서 활용했던 자료가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어져 저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자료화하여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기위해 블로그 하는 것 입니다.(파워 블로그 될 주제가 아니라는것도 잘 알고 있고 그럴 의향도 의지도 없습니다. 하루 게시글 하나 올리는 것도 사실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력서 샘플 역시 당초 공개발행 하였으나 오용과 타사이트에 게재되는등의 문제가 많아 이력서 샘플믄 댓글로 신청하시는 분들에게 한하여 제한적 공개를 해드릴 예정입니다.

텔레그램, 카톡, 이메일 그런것 전혀아니고 돈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마카세까진 아니더라도 언제든 후배들과 친구들에게 한우 사줄 정도의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무의미하게 글이 퍼날라지는 것으루방지하기 위함이니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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